『책을 읽는 방법』, 히라노 게이치로/김효순, 문학동네, 2008

책을 읽는 방법책을 읽는 방법 - 10점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김효순 옮김/문학동네

"독서를 즐기는 비결은 무엇보다도 '속독 콤플렉스'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물론 무턱대고 천천히 읽으면 된다는 것은 아니다...여느 일과 마찬가지로 독서에도 역시 비결이 있다. ...이 책은 그 비결에 대해 쓴 책이다. "(9P, 들어가며 중에서)


히라노 게이치로의『일식』을 읽으면서 왜 이 책은 책장이 훌쩍 넘어가지 않는지 고민했었다. 줄거리가 간단해서 죽 읽어내려가면 될 것 같은데, 뭔가를 놓치는 것 같은 느낌. 그때는 마지막 장을 덮고 책 뒷부분의 대담을 읽으면서 반쯤은 해답을 찾았고, 나머지 반은 번역자를 타박했었다(지금도『일식』의 번역문은 그리 잘 된 번역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방법』은 그 때 내가 느낀 불편함에 대한 저자의 (의도하지 않은) 해답편이다.


나처럼 일단 책을 벌려 놓고 기한 내에 읽어치워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에게 책 한권을 붙들고 오래 앉아 있는 건 때론 고문에 가깝다. 이 책을 읽고 다음엔 또 무슨 책을 읽어야 하는데...라며 읽을 책이 눈 앞에 아른거리는데『일식』과 같이 안 읽히는 책을 접하게 되면 던져버리고 싶어하면서도 의무감 때문에 대충 훑어보고 넘긴다. 이런 일이 거듭되다 보면 이야기의 구조나 행간의 의미는 생각해 볼 여유가 없다. 그런 걸 생각하느니 차라리 그 책에 대한 해설이나 평론을 읽는 쪽을 택할 것이다. 『책을 읽는 방법』은 이렇게 속독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차분하게 다시 생각해보라고 권하는 책이다. 그래서인지 책의 구성 자체는 일반적인 자기계발서와 유사한 구성을 따르고 있다.


1부는 '양에서 질로의 전환-슬로 리딩 기초편'이라는 제목으로 슬로 리딩은 무엇이며 왜 필요한 것인지 밝히고 있다. 즉, 자기계발서에서 **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독자를 끌어들이는 그 단계이다. 여기까지는 국어책에서도 볼 수 있는 흔한 내용이었다. (사실은 1장을 읽으면서 "질(質)이다, 질!"을 일갈하신 모 회장님이 생각나서 좀 우스웠다)


그럼 그 흔한 자기계발서에서 독자가 일단 @@하기로 결심하면 그 다음엔 어떻게 할까?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해주고, 사례를 나열해서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갖게 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2부와 3부는 각각 테크닉편과 실천편으로 '슬로 리딩(지독(遲讀))'하기로 결심한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2부에서 히라노는 구체적인 예시보다는 일반적인 방법을 제시하는데 치중하는데, 독자 나름대로 책을 읽어나가면서 저자의 의도와 다르게 해석하는 오독(誤讀)의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3부에서는 주로 일본작가들의 문학작품을 사용해서 텍스트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예시를 제공한다. 개인적으로 3부에서 인상깊었던 것은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과 카프카의『다리』, 푸코의『성의 역사』의 발췌문이었는데,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해석에 있어서 '시대배경'과 '5W1H', '장면전개의 의미', 그리고 '보조선과 메모를 활용한 평론의 해석'이다.


나는 스토리라인을 빠르게 따라가거나 일방적으로 흘러들어오는 정보를 빨아들이는데 길들어 있던 터라, 예시문을 보면서 레고를 조립하는 것처럼 머릿속에서 글의 설계도를 재구성해보는 것이 참 낯설게 느껴졌다. 지은이는 나쓰메 소세키의『마음』과 카프카의『다리』를 예로 들어 '시대배경'과 '5W1H'가 해석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장면전개'의 의미를 설명하는데, 대화와 서술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쌓아 올려 만들어지는 한층 풍부한 이미지는 한번에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히라노는 푸코의『성의 역사』라는 유일한 비문학을 집어넣었는데, 이 예시를 통해서『책을 읽는 방법』은 글을 해석하는 방법에서 쓰는 방법으로 확장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불과 몇 쪽의 예문을 통해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책의 논지 전개과정을 어떻게 분석하여 정리하는지 설명하고, 쓰거나 말하는 방식으로 다른 용례를 제공하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한 방법을 충실히 따라가는 마지막에서 새로운 경지를 제시하는 것, 이거야말로 전형적인 자기계발서의 구성이 아닐까.(더군다나 저자는 마지막의 푸코의 글이 편집부의 요청으로 포함된 챕터라고 밝히고 있는 것이 혐의를 더 짙게 했다)


뭐, 리뷰에서 이런 식으로 나름의 해석을 가미하게 된 것을 보면, 꽤 쓸만한 책이다. 다음에 순문학을 읽을 때는 이 책에서 제시한 방법론을 염두에 두고 정밀한 독해를 시도할 것 같다.

http://tabbycat.egloos.com2008-06-25T14:54:100.31010

by tabbycat | 2008/06/25 23:54 | 어문학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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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와우 이야기 at 2008/07/02 01:34

제목 : 책을 읽는 방법 / 히라노 게이치로
히라노 게이치로는 슬로 리딩(slow reading)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작가의 개인적 경험과 맹목적인 속독 예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은 속독 만능주의에 빠진 많은 독서광들에게 눈을 감고 잠시 사유의 시간을 가지도록 권하고 있다. 남에게 뒤질세라 속독 맹신주의에 빠졌던 나에게는 일종의 브레이크가 되는 책이라고나 할까? 특히 게이치로는 모든 책에는 작자의 의도가 내포되어 있고, 독자는 이를 찾아가면서 읽어야......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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