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 히라노 게이치로/양윤옥, 문학동네

일식일식 - 6점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문학동네

1482년, 도미니크 회의 수도사이며 파리대학 교수인 화자는 피치노의『헤르메스 선집』이라는 책을 찾아 리옹으로 여행한다. 그는 도중에 들른 개간촌에서 조우한 연금술사 피에르 뒤페를 만나게 되고, 일식을 겪는데...

대학 재학 중 나오키상을 수상했다는 작가에 흥미를 가지고 구해 본 책이다. 좋아하는 타입의 소설은 아니지만 끝까지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힘있는 책이었다.

그렇지만 소설보다는 뒷부분에 실린 인터뷰가 인상깊었다. 재일 문화평론가 장기권이 진행한 인터뷰를 보면, 히라노는 수상 직후 인터뷰에서 작품의 시대배경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 시기는 아우구스티누스적인 전통의 기독교에 있어서, 육과 영이라든가, 신과 세계라든가가 무한히 접근했습니다. 20세기 이전에 단 한 번 있었던 예외의 시기였지요. 그것이 플라톤주의 수용과 종교개혁에 의해, 다시 신과 세계는 쫙 갈라져서, 육에 대한 영의 우위가 확립되어버립니다. 그 갈라지기 직전의 긴장된 시기가『일식』의 시대 배경입니다."

그렇다. 20세기 이전에 단 한 번 있었던 그 긴장이 현재와 닮아 있기 때문에 평이하고 단순한 이 소설이 일식과도 같은 흡입력을 가지는 것이다.

그런데도 평점을 낮게 준 이유는 두가지다.

첫째는 번역 문제. 물론 어렵게 쓰기로 유명한 작가라고 하고, 인터뷰에서도 "작가가 글을 쓰는 데 있어, 독자의 수준을 낮게 설정하고 이해하기 쉬운 표현을 골라가면서 쓰는 태도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라는 겁없는 소리를 하는 작가이지만...작가는 메이지 시대 정도의 예스러운 느낌을 살리려고 일부러 어려운 한자어를 썼다는데, 그 일본식 한자어를 그대로 옮기고 뒷면에 주를 다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주를 찾아보니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단어도 많았다. 한자어를 그대로 한국 음으로 옮겨 놓으니 투박하기만 할 뿐 예스러운 아름다움은 안 느껴져서 참 아쉬웠다.

둘째는 편집 문제. 처음부터 중세 신학 논쟁과 연금술에 관한 단어가 나오는데 일일이 뒷쪽의 미주를 찾아야 한다. 중간에 들은 적도 없는 한자어를 넣어놓고 역시 맨 뒤로 가서 찾아야 한다. 이런 부분은 단어가 나오는 부분에 바로 주를 넣어줘야 한다. 볼 때마다 흐름이 끊기는 것도 상당히 짜증스러운 일이다. 그 외의 편집은 큰 무리는 없었지만, 표지 디자인이 좀 촌스럽다. 뭘 말하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세련되지는 않다는 거, 안쓰럽다.

*그물읽기*
-미르치스 엘리아데의 저작들. 역시 뒷쪽의 인터뷰에서 봤음.
-『문명의 우울』, 히라노 게이치로/염은주, 문학동네 : 지은이가 쓴 수필집. 난 이사람, 소설보다는 수필이 더 나을 것 같다.


http://tabbycat.egloos.com2008-05-08T13:45:070.3610

by tabbycat | 2008/05/08 22:45 | 어문학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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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네추랄하게 at 2008/06/02 01:41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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